24절기 처서(處暑) 의미 풍속 상징 알아보기
여름 끝자락,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 절기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됩니다. 바로 24절기 중 열네 번째인 처서(處暑)인데요. 이름 그대로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의 기운이 찾아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농부들에게는 곡식이 여무는 중요한 시기였고, 일상 속에서는 벌초나 포쇄 같은 생활 풍습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처서의 의미와 풍속, 그리고 날씨가 지닌 상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처서,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찾아오는 절기
처서(處暑)는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로, 매년 8월 23일 전후에 찾아옵니다. 이 시기는 입추와 백로 사이에 자리하며, 태양이 황경 150도에 도달한 시점과 맞물려 있습니다.
말 그대로 더위가 물러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문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절기를 만들어왔는데, 처서 역시 그중 하나로 계절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귀뚜라미가 전해주는 계절의 소리
흔히 처서를 두고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시기, 벌레 소리가 들리며 가을의 도래를 알린다는 의미인데요.
실제로 처서 무렵부터 아침저녁으로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가 하나둘씩 들리면서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소소한 변화가 삶의 리듬을 알려주는 전통적인 달력 역할을 했습니다.
고려사에 기록된 처서 풍속
고려사 「지(志)」 권50에도 처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처서 기간을 5일씩 세 구간으로 나눠, 초후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차후에는 가을 기운이 돌며, 말후에는 곡식이 익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풍속이 아니라 농사의 주기와 계절감을 담은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처서를 단순히 기후적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삶과 농경 활동 전반을 연결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처서 무렵의 생활 풍습
처서가 지나면 볕이 한결 누그러지고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이때 논두렁 풀을 베거나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했습니다. 또한 장마철에 젖었던 옷이나 책을 꺼내 말리는 포쇄, 음건 풍습도 이 시기에 행해졌습니다.
여름 내 습기와 곰팡이에 시달리던 물건들을 햇볕에 말려 새 계절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서는 단순히 날씨가 선선해진다는 의미를 넘어, 생활 전반에서 정리와 준비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기와 파리가 사라지는 시기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늘한 기운이 돌면서 여름 내 극성이던 모기와 파리가 자취를 감춘다는 의미인데요.
실제로 기온이 내려가면 해충 활동이 줄어들고, 대신 귀뚜라미 같은 가을 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여름철 불청객이 사라지고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흐름을 속담으로 재치 있게 표현한 것입니다.
농사와 깊이 연결된 처서
처서 무렵은 벼의 이삭이 패는 시기로, 날씨가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햇살이 충분해야 벼가 성숙할 수 있는데, 이때 비가 오면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썩기 쉽습니다.
그래서 “처서에 장벼 패듯”이라는 말은 벼가 무르익는 과정을 빗대어 쓴 표현이자, 농사에 있어 이 시기의 햇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농부들이 가장 꺼리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처서비’입니다. 처서에 내리는 비는 곡식의 성장에 치명적이라 “십리에 천석을 감한다.”라는 속담까지 생겼습니다. 벼가 이삭을 틔우는 시기에 비가 내려 물이 고이면 제대로 영글지 못해 흉작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체득적 지혜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전해졌는데,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이 시기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데, 비가 오면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아 혼수 준비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대추농사가 중요한 지역 특성과 생활이 반영된 속담으로, 처서라는 절기가 단순히 계절의 변화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민속, 생활문화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농사철 중 가장 바쁘던 시기를 지나, 처서 무렵에는 비교적 한가로운 시기가 찾아온다는 의미인데요. 백중이 끝난 뒤 농부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다가올 수확을 준비했습니다.
덥고 습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가볍고 여유로웠을 것입니다.
오늘날 처서의 의미
현대 사회에서는 농경 생활의 직접적 의미가 줄어들었지만, 처서는 여전히 계절을 체감하는 지표로 쓰입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며, 사람들의 옷차림과 생활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여전히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처서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계절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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